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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

[런던 2012] 피멍 든 맨발의 요정… '서구 독무대' 리듬체조 판 흔들다

[런던 2012] 피멍 든 맨발의 요정… '서구 독무대' 리듬체조 판 흔들다

 

런던(영국)=손장훈 기자

2012.08.11 03:10

 

[손연재 6위로 사상 첫 올림픽 결선… 오늘 밤 메달 도전]


울퉁불퉁 요정의 발 - 곤봉 연기 중 신발 벗겨져도 흔들림 없이 침착한 연기
독한 18세 - 작년 러시아 홀로 날아가 1주에 슈즈 한 개 닳도록 훈련
결선에선 선수 10명 새로 시작… 내친김에 메달 노려볼 수도

 

'요정의 발'은 울퉁불퉁했다.

10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아레나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리듬체조 개인종합 예선 둘째 날.
손연재(18·세종고)의 오른쪽 슈즈가 곤봉 연기 도중 벗겨져 버렸다. 전날 후프(28.075점·3위)와 볼(27.825점·6위)에서 선전을 펼친 손연재는 이날 긴장한 듯 몸이 굳어 보였다.

 

10일 영국 런던 웸블리 아레나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리듬체조 개인종합 예선에서 곤봉 연기를 벌이던 손연재의 오른발 슈즈가 벗겨지고 있다. 손연재의 맨발은 군데군데 피멍이 들었고 발바닥에는 굳은살이 두껍게 박여 있었다. /연합뉴스 

 

드러난 손연재의 발은 검붉었다. 군데군데 피멍이 들어 있고, 발끝으로 서는 훈련을 수없이 반복하는 바람에 발가락은 울퉁불퉁했다. 발등에는 힘줄이 튀어나왔고 발바닥에는 굳은살이 두껍게 박여 있었다. 슈즈에 가려져 있던 하얀 발가락은 1998년 US오픈에서 우승한 박세리의 맨발을 연상케 했다. 손연재에게 못생긴 발은 늘 콤플렉스이자 '일급비밀'이었다. 평소 대회에 나갈 때나 광고를 찍을 때면 늘 멍든 자국이 보이지 않도록 다리와 발에 곱게 화장을 했다.

슈즈가 벗겨지면서 동작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아 감점을 당한 손연재는 곤봉에서 26.350점(18위)을 받았다. 리본에서 자신감 넘치는 연기를 펼친 손연재는 28.050점(5위)을 받았다. 손연재는 4종목 합계 110.300점을 받아내 전체 6위로 당당히 결선에 올랐다.

 
손연재가 10일 런던올림픽 리듬체조 개인종합 예선에서 리본 연기를 펼치고 있다. /뉴시스
 

리듬체조 불모지인 한국에서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한국 리듬체조 선수가 올림픽 결선에 오른 것은 사상 처음이다. 한국의 선수가 올림픽 무대를 밟은 것은 1988·1992·2008년에 이어 네 번째, 역대 최고 성적은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신수지(21)가 기록한 12위였다. 결선에 오른 다른 선수들은 러시아·불가리아·아제르바이잔·우크라이나·벨라루스·폴란드·이스라엘 출신이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결선 진출 선수가 10명으로 규정된 이후 아시아 선수(중앙아시아 제외)가 리듬체조 결선에 오른 것은 손연재가 처음이다.

11일 오후 9시 30분 시작하는 결선에서는 10명의 선수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내친김에 메달까지도 노려볼 수 있다는 얘기다.

연재는 '독한 요정'

손연재는 다섯 살 때 처음 리듬체조를 배웠다. 어머니 윤현숙(44)씨가 목소리 크고 뛰어놀기 좋아하는 딸에게 마음껏 운동할 기회를 주려고 집 근처 세종대학교 어린이 리듬체조 학교에 보냈다.

귀여운 외모의 손연재가 대회에 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구경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국내 대회를 휩쓸면서 6학년 때 최연소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뽑혔다. 손연재를 가르친 김유경(37)씨는 "보통 아이들은 혼을 내면 땅을 쳐다보는데 연재는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고 말했다. 

 

 

2009년 슬로베니아 챌린지 주니어 대회에서 3관왕에 오르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린 손연재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깜짝 동메달'을 따냈다. 그리고 이듬해 2011년 초 러시아 대표팀 훈련 장소인 노보고르스크 센터에 혼자 짐을 풀었다.

소녀의 '무한 도전'

한국에서는 '떠오르는 CF 스타'이자 '국민 여동생'으로 관심을 한몸에 받았지만 러시아에서 손연재는 낯선 외국 선수에 불과했다. 처음엔 주위에 보이는 건 바다밖에 없는 노보고르스크 센터에서 향수병에 시달렸다. 러시아어에 서툴러 함께 훈련하는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밥도 혼자 먹었고 혼자 방에서 울었던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하루 10시간씩 혹독한 훈련을 견디고 틈틈이 러시아어를 공부하며 이를 악물었다.

2010 세계선수권 32위였던 손연재는 1년 만에 11위까지 끌어올려 당당히 올림픽 티켓을 따냈다. 손연재는 언제나 '완벽'을 목표로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러시아·동유럽의 텃세를 이겨내고 팔·다리 긴 서양 선수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완벽한 연기를 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슈즈는 일주일에 한 개씩 닳아 버렸고, 곤봉은 던지고 받고 잡고 돌리는 훈련을 하도 많이 해 올해만 벌써 3개 넘게 부러졌다.

"저는 리듬체조에 제 모든 것을 걸었어요. 제가 사랑하는 리듬체조가 저를 통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면 좋겠어요." 소녀의 도전에는 한계가 없다.

 

Source: new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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