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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人命在天

人命在天

탄이 복부에 명중하고 멈춤.

이 내용은 한국전쟁 당시 공격소대장(필자, 이근식 소위 해간 3기)이었던 제2중대 제3소대장이해병대의 5대 전투의 하나인 "도솔산 전투"에서 목표를 공격 중 적의 저격에파격되어 전사했었거나 또는 치명적인 부상(척추 관통상)으로 인하여 불구가 되었을 상황 속에서 상처하나 입지 않고 생존하여 목표를 점령하게 되었다는

사실내용을 독자들에게 설명하므로써 최선을 다할 때 "기적은 오늘날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확증하고저 하는데 목적이 있음.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불법적인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이 한참 치열함을 더해 가고 있을 때인 1951년 6월 4일부터 해병 제1연대(연대장 金大植 대령)는 중동부전선 강원도 '양구'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도솔산(兜率山)'의 24개 목표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 내용은 그 당시 해병 제1연대(김대식 대령 제3대 해병대 사령관) 제1대대(대대장 공정식 소령 제6대 해병대 사령관) 제2중대(이응덕 중위) 3소대장이었던 필자의 연대 공격목표인 #4 목표의 중간 목표(무명고지)를 공격할 때의 상황 중 "人命在天"에 관한 내용만을 발췌하여 언급했으며기타 자세한 공격상황에 대해서는 "제2중대의 목표#4 공격"을 참조하기 바람.

제2중대 3소대장 이근식 소위(1951년 2월)

 한국전쟁 중 해병 제1연대의 "도솔산 전투(중동부전선)" 당시 제1대대 제2중대의 목표 #4에 대한 공격은 6월 6일부터 개시되었으나목표지역의 고지 정상으로부터의 적의 수류탄 투척을 동반한 완강한 저항으로 첫날의 제1소대의 공격은 1소대장(최용남 소위 해간 3기)의 부상(중상으로 후송)으로 인하여 실패하였다.

다음날(6월 7일) 09:00시부터 시작된 2소대와 3소대의 공격도 적의 완강한 저항, 고지 정상으로부터의 수류탄 투척을 동반한 완강한 저항으로 인하여 여러명의 해병들이 희생되어 공격이 돈좌되었다. 이때, 재공격을 위하여 해병들이 재공격 준비를 하고 있을 때 '人命在天'의 기적이 일어났다. 다음은 그 중의 내용이다.

 1. 3소대장의 피격: 人命在天

우리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이 다시 공격을 계속해야 했다. 소대원들도 어느 정도 원기를 회복한 듯 보였다. 그것은 3소대장이 단독으로 수류탄 2발은 안전핀을 뽑고 두손에 쥐고 2발은 허리의 권총 탄띠에 차고 4발로 목표를 공격하는 멋있는 서부활극같은 장면을 공짜로 봤으니! 그리고이에 따라 소대장에 대한 믿음이 생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투 중에 지휘관에 대한 믿음이 그 전투의 승패를 좌우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어야 한다.

 (1) 지휘관의 솔선수범

지휘관의 솔서수범은 그의 부하들에게 그 상관에 대한 믿음을 주게 되며 그 믿음이 유사 시나 또는위급할 때 그 지휘관의 지시에 절대 복종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믿음은 자연발생적으로 전우애로 승화되어 전투 시 자신의 생명을 전우를 위하거나 또는 상관의 명령에 의해 기꺼히 버릴 수 있는 희생의 정신자세로 변하여 강한 전투력을 발휘하게 된다.

 솔선수범이란! 남을 위한 희생의 정신의 발로이며 이는 자신을 희생하고 남을 살리는 정신이기도 하다. 그것이 군인정신이며 또한 우리, 해병들의 정신인 것이다.

나는 소대장이기 때문에 맨 앞에 엎드려 대원들의 재차 공격을 위한 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소대장의 공격 시의 위치는 항상 맨 앞이다. 따라서 소대장의 전사 확률이 높기 때문에 소대장을 그 당시'소모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정상까지는 60m 내외의 거리인데 단숨에 올라가기에는 경사도가 너무 심했다. 물론 수류탄을 투척해도 위에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거리다.이럴 때 우리에게 총유탄발사기가 필요했으나 우리에게는이때 그것이 없었다. 정말 아쉬웠다. 그러니 우리는 이때 산위의 적에게 직접 돌격하기 전에는 속수무책으로어떻게 할 수 없었다. 전원이 엎드려 있었다. 이때 적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60mm 박격포 사격도 요청할 수 없었다.

 (2) 天佑神助

그런데 산 정상의 숲 사이에서 갑자기 "딱 콩"하는 총성이 들리더니 나는 마치 큰 방망이로 배를 얻어 맞은 것 같은 큰 충격으로 "앗"하며 몇 바퀴 뒤로 뒹굴었다. 그리고 "맞았구나" 했다. 그 충격으로 나는 순간적으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복부가 관통되었다면 어디인가 아플터인데? 피도 날텐데? 하면서 배를 더듬어 보았는데 이상하게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배꼽 밑이 몹시 뜨겁게 느껴졌다. 피가 흘러서인가 하고생각했다. 권총탄띠를 풀고 보니 전투복은 틀림없이 총알에 맞아 구멍이 뚫려 있었다. 마치 쥐가 이빨로 옷을 물어뜯어 찢어 놓은 것 같이 전투복이 찢겨져 구멍이 뚫어져 있었다. 그런데 나는 멀쩡했다. 이걸 보고 나는 나자신이 놀라웠다. 어떻게 된 건지?과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것은 적이 쏜 총알이 내가 죽음을 각오하고, 사실은 죽을 꺼라는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는지? 혹은 못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적진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붕 떠서 딩굴며 돌아왔을 때 내가 허리에 차고 있던, 권총탄띠의 왼쪽에 걸어 차고 있던 탄창(칼빈 소총탄 15발)의 주머니(탄창 2개 들어 있음)가 나의 복부쪽으로 돌아와 있어서 그 탄창의 맨 위에 장전되어 있던 총알의 탄피(약협) 2개를 관통한 적탄이 관통력이 약해져서 총알이 회전하면서 나의 전투복을 뚫고 또속내의를 뚫고 복부 위에서 기적같이 멈췄던 것이다. 끄집어 내보니 아직 따뜻한 적의 총알이었다.

이거야 말로 '천우신조(天佑神助)'가 아니겠는가? 만일 1~2mm 라도 그 총알이 아래로또는 위로 혹은 옆으로 맞았으면 나는 틀림없이 척추관통으로 전사했거나 혹은하반신 마비의 불구자가 됐을 것이다. 이것은 정말 거짓말 같은 사실이아닐 수 없었다.

누구든 이런 사실을 믿을 수 없다 할 것이다.그러나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그것을 기적 같은 일이라 한다. 그 기적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기적은 오늘날도 우리의 주변애서, 또 우리의 속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그 기적은 나에게서 이 순간 일어난 것이다.

 우리 소대장님 만세

소대장이 적탄에 맞아 뒹구는 것을 보고 침통한 표정에 잠겨있던 해병들도 내가 "안 죽었어!"하며 손을 흔들어 보이니 다시 함성이 터젔다. "우리 소대장님 만세!".오늘 벌써 두번째로 듣는 "소대장님 만세"소리이다.

"인명 재천(人命在天)"이라더니 정말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이거야 말로 정말 하늘의 도우심이었다. 나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적탄에 정통으로 급소를 맞고도 상처 하나없이 살아났다는 것은 틀림없이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누구든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지 알 수 없으나 우리 주변에는 이런 불가사의한 일들이 있음을 알자.나는 이때"이제 나는 죽지 않는다"라는 어떤확신을 갖게 됐다. 이 이상 더 큰 확신이 이 세상에 과연 있을 수 있을까?

(3) 3소대장의 단독 공격("도솔산 공격" 내용에서 발췌)
이때의 공격 상황에 대해서 더 자세히 설명하면우리, 3소대에서도 최초 공격 중 20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여 우리는 도저히 공격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이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책임을 생각했다. 소대원들의 희생에 대한 소대장으로서의 책임이다.

위의 공격상황도는 제2중대의 공격목표인 무명고지 공격대형을 보여주고 있음.3소대 우측(주공) 2소대 좌측(조공)

 그때 나는 소대장이라는 책임감으로 인하여(필자의 저서'노해병의 어제와 오늘'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음) 단독으로 적의 진지에 포복으로 기어올라가 산 정상에서 우리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는 적진지를 수류탄 2발씩 두 번에 걸쳐 4발로 공격하기도 했다. 그때의 나의 심정은 "죽게 되면 죽으리라" 하는 어떤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비장한 각오, 심리상태에 있었다. 그 순간은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거니와 죽음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오직 목표 점령에만 전념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나의 행위는 소대장이라는 책임감에서 비롯 되었다. 더욱이 내가 단독으로 공격하겠다고 2소대장에게 이야기했을 때 2소대장은 "안돼, 너 올라가면 죽는거야" 하고 나를 극구 말렸고 그때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2소대 분대장은 "3소대장은 죽을 때가 되어서 저런다." 했고, 어떤 대원은 "3소대장이 돌았다"고 나의 뒤통수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을 나는 나의 등뒤에서 들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소리는 남의 소리 같이 들렸다. 사실 나는 그때 죽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아 있었다. 너무 많은 사상자가 짧은 시간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해병대의 전통

그래서 우리는 전투를 위한 전투를 할 때가 있다. 물론 전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한다 하지만 그것은 대의명분이고 직접 총을 들고 적과 전투를 하는 군인들은 그것에 앞서 상관의 명에 의해 전투를 하고 또 전투를 이기기 위해서한다.동시에 전투 중 전사한 전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전투를 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 해병들이 그 당시에 갖고 있던 전투정신이고 그것이 우리, 해병대의 전통이다. 결국 우리는 해병대의 전통을 위해서 전투를 한 것이다. 그 정신이 오늘의 해병대, "귀신 잡는 해병대"를 만들었다. 오늘의 해병들은 이런 선배 해병들의 정신을 기억하고 있는지 나는 묻고 싶다.

이때의 나의 행동은 내가 좋아서 취한 행동이아니라 그것은 소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공격에서 나는 "죽게 되면 죽으리라"하는 정신으로 산 정상의 적진지를 슈류탄으로 소대원들이 산 중턱 50-60m 뒤에서 보고 있는 가운데 나 혼자서 공격한 나의 행동이 몇 분 후 적의 저격으로부터 나를 구해 주었다. 이것은 정말 기적이었다.

 이것은 사실 기적 같은 일이 아니라 기적 그 자체였다. 그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거나 또는 보이면 우리는 그것을 기적 같다고 이야기 한다.

 적탄에 복부 피격

그 기적은 내가 나의 책임을 다하고 소대원들에게 본을 보이기 위하여 적진지를 단독 공격 후 소대원들과 함께 다시 적을 공격하기 위하여 준비 중에 엎드려 있을 때에 일어난 것이다.

 재공격을 위하여 소대원들이 산개하여 준비하고 있는 동안 나는 (소대장은 전투 시 항상 맨 앞에서 소대를 지휘하기 때문에 전사할 확률이 높아서 '소모품'이라고 호칭했음) 2-3m 소대원들이 산개해 있는 앞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하게 엎드린 자세로 대원들이 공격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느닷 없이 정상으로부터 적의 저격을 받았다.

 "딱 콩"소리와 함께 나는 "악"하면서 그 총알에 맞은 충격으로 뒤로 몇 바퀴 뒹굴었다. 그것은 마치 큰 몽둥이로 배를 세게 두들겨 맞은 것 같은 아주 큰 충격이었다. 그 순간 나는 "맞았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적탄에 맞은 배를 보니 이상하게도 아프지 않고 피도 흘러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거 어떻게 된거야?"하면서 총알에 맞은 복부를 권총탄띠를 풀고 살펴보니 칼빙소총(소대장 휴대병기) 탄창주머니(15발이 장전된 탄창 2개 들어있음)를 허리 왼쪽에 권총탄띠에 걸어서 차고 있었는데 그것이 적과의 전투 중에, 즉 내가 산 정상의 적의 진지로 포복으로 기어올라가 적의 진지에 수류탄 4발을 두발씩 두 번에 걸쳐 투척하고 수류탄의 폭음과 함께 소대원들이 산개하고 있는 진지로 마치 수영선수가 다이빙하듯이붕 떠서 굴러 돌아왔을 때의 나의 동작으로 내가 차고 있던 그 권총탄띠가 오른쪽으로 돌아가면서 함께 그 탄창주머니가 앞으로 돌아와 나의 복부 위에 있었다.

 그 적의 총탄이 탄창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탄창을 두개, 그것도 맨 위에 있는 칼빙실탄 2발의 약협을 동시에 뚫은 후 관통력이 약해지면서 나의 전투복 상의와 하의를 마치 쥐가 이빨로 물어뜯은 것 같이 찢어 구멍을 내고 또 내복(지대가 높아서 추웠음)도 같은 상태로 구멍을 냈었다. 그리고 그 총알은 나의 속옷 위에서 아직도 뜨거운 상태로 기적 같이 멈춰져 있었다.(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저서 '노 해병의 어제와 오늘'에 수록되있음) 이거야말로 "천우신조"가 아닐 수 없는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교훈

그 당시 나는 운이 좋아서 총알에 맞고도 살았다고 생각했었으나 많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거기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의 도움과 하나님의 뜻이 있었음을 나는 깨닫게 되었다. 즉 그것은 하나님이 내가 "죽게 되면 죽으리라"하고 결심하고 혼자서 적을 공격하기로 한 '용기'를 나에게 주신것이었다.
하나님은 나를 적의 총격에서 직접 적탄이 나를 피해서 가도록 해서 보호해 주신 것이 아니라 "죽게 되면 죽으리라"하는 나의 행동에 용기를 주심으로서 내가 혼자서 적을 수류탄으로 공격하게 하셨다. 그 결과로 나는 그 탄창주머니로 인하여 살게 됐다는 믿을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우리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는 '지혜나 용기'를 주시는 것이지 직접 그 문제를 해결하시는 것은 아니다라는 교훈이 되겠다. 우리는 이 교훈을 꼭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으니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겠지 하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리는 막연한 신앙은 버려야 한다. 그것은 비성경적이고 또한 맹신이다. 따라서 이루어질 수 없다.

 그 결과로 나는 적의 총탄을 직접 몸에 맞고도 상처하나 없이 살아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만일 나에게 그런 '용기'가 주어지지 않았으면 나는 단독으로 적을 공격안했을 것이고 그러면 권총탄띠에 걸어서 허리 왼쪽에 차고 있던 칼빙총의 탄창주머니도 앞으로 돌아와 있지 않았을 것이니, 그러면 그 적의 총탄은 나의 복부를 뚫고 척추를 관통하게 되어 결국 나는 21세의 젊은 나이로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났을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닌가?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다시 용기를 얻게 된다. 이후의 나의 삶은 덤으로 살고있는 거나 다름이 없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 볼 수 있는 하나님의 기적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기적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은 직접 우리의 생활에 개입하시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그렇게 조성해 주시거나 또는 그러한 지혜나 용기를, 혹은 마음을 주신다는 가르침이다.

이 경우 나에게 그 당시 필요했던 것은 '용기'였다. '용기'가 없이 그런 무모하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자살행위 같은 행동을 나는 할 수 없었을것이며 그 행동의 결과로 나는 적탄에 맞고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날까지 그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에 감사하며살고 있다.

결국 "죽고저 하는자는 살고 살고저 하는 자는 죽는다"라는 성경의 가르침이 현실로 나를 통해서 나타난 것이고 나는 그것을 체험하고 확신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짧은 생애를 고아사업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시키고 가정을 돌보지 않고 그의 삶을 산 나의 부친의 후손들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의 실행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즉 " I lavish my love on those who love me and obey my Commands, even for a thousand generation"

이 놀라운 기적같은 이야기가 당시 부산에서 발행되고 있던 自由新聞(신익희씨 발행)'의 사설(1951년 6월 중순으로 기억 됨)에 "人命在天" 라는 제목으로 기사화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진일이 있다.

 oldma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