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ndependent

6.25전쟁은 남침이다, 왜곡하지 말자.

 6.25전쟁은 남침이다, 왜곡하지 말자.

 

상기하자 6.25!, 잊지 말자 6.25,

 

작성자 : 조성화   

작성일 : 2013-6-18 15:13:9  


요즘 교과서에는 삭제된 구호인지 모르지만 40~50 중년들은 많이 보고 들어본 구호일 것이다. 60여 년이란 세월이 흘러서 그런지 우리들은 6.25의 아픈 상처를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


어느 보고서에 의하면 중고생 300명중 약 70% 이상 학생들이 6.25가 왜, 언제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을 뿐더러 관심조차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발표됐었다.


그동안 우리(南)는 휴전이후에도 무장공비 김신조 사건과 아웅산테러, 울진, 삼척 무장공비사건 등등...끊임없는 도발을 당했으며, 근래에는 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과 민간마을을 겨냥해 포를 난사하는 무자비한 악행을 자행했던 자들이 바로 6.25동란의 원흉인 북한 괴뢰집단인 것이다.


세월이 흘러 저들의 전술 또한 바뀌지 않을 수 없어 바뀠었다지만, 대남을 겨냥한 일관적인 적화전략은 공산정권 수립 후, 지금까지 바뀌지 않았다. 근래일어난 우리 초계함인 천안함 폭침과 자신들 포구 사정거리에 위치한 연평도 민간마을을 겨냥해 포격한 명백한 증거가 금수같은 저들 만행이 입증된 것이다.


북한에 있는 금강산도 구경가고, 개성공단도 조성하여 남북간 교류가 원활한데 구태어 6.25라는 쾌쾌묵은 과거사 들쳐내서 뭣하자는 것인가,라는 국민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사회 현실에 편향된 교육관은 참혹할 정도로 살육을 자행하며 소중한 생명이나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겼던 일제시대나 6.25사변같은 고리타분한 사건에 대한 교육에 큰 비중이 차지하는 시간을 절약하자는 것인지.....알 수 없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38선상의 북한군 야포가 남쪽을 향해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하고, 북한군 기동부대가 서쪽의 옹진반도로부터 동쪽으로 개성, 전곡, 포천, 춘천, 양양에 이르는 38선 전역에서 공격을 시작했다. 또한 유격대와 육전대가 동해안을 따라 강릉 남쪽 정동진과 임원진에 상륙했다. 우리민족의 최대 비극이었던 6.25전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북한군의 기습남침이 시작되자 38선으로부터 불과 40㎞ 남쪽에 위치한 서울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았다. 사전에 치밀한 남침계획을 수립했던 북한군도 남한의 그같은 약점을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울 북쪽에 주공인 제1군단을 투입해 서울을 목표로 집중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중부전선의 춘천과 동부전선의 강릉 북쪽에서도 북한군 제2군단의 공격이 동시에 시작됐다.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은 38선 일대의 국군 장병들은 즉시 전투태세에 돌입했으며, 주둔지에서 새벽잠을 깬 부대원들은 출동준비를 갖추기에 바빴다. 그동안 지속되었던 비상경계령이 불과 하루 전인 6월 24일(토요일) 00시부로 해제되었으며 주말을 맞이해 많은 병력이 외출·외박을 나갔기 때문에 부대에 남아 있는 병력은 많지 않았다.


38선의 국군 방어진지에서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적 부대와 치열한 접전이 이미 전개되고 있었다. 국군 부대들이 미처 준비태세를 갖추기도 전에 방어진지를 기습한 북한군의 공격을 선도하고 있는 것은 소련제 T-34전차와 SU-76자주포였다.


그들의 전차와 자주포가 국군의 방어진지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으나, 당시 국군은 단 한대의 전차와 자주포도 갖지 못했다. T-34전차를 격파할 수 있는 대전차무기도 없었다. 따라서 북한군의 전차는 무적의 괴물이었다.


전차의 위력을 보고 있는 국군 용사들은 공포의 도가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많은 장병들이 전의를 상실했다. 그러나 모두가 그냥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다. 화염병을 들고 또는 박격포탄을 메고 전차를 향해 달려들었다. 감히 대적할 상대가 없을 것이라며 방심하고, 헷치를 열어놓은 채 진격하고 있던 전차에 올라타 전차의 내부에 화염병을 던졌다. 또한 포탄을 등에 맨 채 육탄으로 전차를 향해 돌격하는 용사도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국군 용사들의 반격에 이제까지 무적임을 뽐내던 북한군의 전차는 화염에 휩싸이거나, 궤도가 잘려졌다. 그러나 그 같은 특공대의 활약도 대세의 흐름을 막지는 못했다. 육군본부 상황실에는 전방사단으로부터 급박한 상황을 알리는 전화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자택에서 상황보고를 받은 육군 총참모장 채병덕 소장은 곧 비상을 발령하고 신성모 국방부 장관을 직접 찾아가 전쟁 발발 상황을 보고했다.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의 거리에는 방송 차량이 장병들의 부대 복귀를 독촉했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 극장과 운동장에도 비상사태를 알리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적과 맞서 싸울 병력이 부족한 대부분의 전방진지는 장병들이 투입되기도 전에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 사실이 신문 호외로 전국에 뿌려지자 국민들은 충격과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다.


6월 26일 13시경, 의정부가 남침 하루 만에 점령되고 27일 오전, 아군부대들이 미처 방어진지를 편성하기도 전에 40여 대의 전차와 자주포로 증강된 적의 공격을 받게 되자 방어부대들은 창동지역을 포기하고 미아리·태릉 일대로 분산 철수했다.


국군 제7사단은 제5사단과 함께 정릉-미아리-청량리를 잇는‘미아리 방어선’을 구축하고, 두 사람이 방어지역을 동서로 나누어 각각 지휘하기로 했다. 그들은 그곳의 지형이 방어에 유리하므로 도로만 차단하면 적 전차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전력을 다해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27일 밤,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적의 공격이 재개됐다. 야간이었지만 전차를 앞세운 적은 미아리 삼거리에 설치해 둔 장애물을 쉽게 밀어제치고 길음교를 통과해 서울 도심으로 진출했다. 이 시각 한강교가 폭파되었다.


미아리 방어선의 붕괴는 서울 방어를 위한 최후 방어선의 붕괴였다. 미아리 방어선 붕괴로 적 전차가 시내에 진입함에 따라 서울 시가지는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시내 곳곳에 차량·목책 등으로 긴급히 장애물을 설치하는 방안이 강구되었지만 효과적인 저항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전쟁 시 서울에서 시가전을 실시하는 방안은 원래부터 고려되지 않았다. 따라서 6월 28일 날이 밝으면서부터 서울은 북한군의 지배하에 놓이게 됐다.
==========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해도 6.25남침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반정부 단체나 종북파무리들이 생산하여 항간에 "6.25는 남침이 아닌, 북침이다,라 왜곡되어 전파되고 있다는 불행한 진실이다.


몇해전 우리해군 초계함이 서해를 순항하다, 북한군에 의해 46인의 무고한 우리 병사들이 수장된 사건이 발생하였고, 6.25를 격으면서 미군 3만 6천여 명과 우리국군 13만 8천여 명과 남북한 민간인들 250만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비극적인 참상이 6.25인데 이를 부인하며 망각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교육열, 안타까운 현실앞에 숙연해질 뿐이다.


나라의 기둥이자 초석들을 양성하는 교육현장에서 진실을 진실이라 가르쳐야지, 진실을 왜곡하고 가식으로 가르친다면 장차 이 나라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는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려면 강해져야 한다. 열강하지 못하면 노략질에 능한 미개발국인 북한이나 위성국들이 수시탐탐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우리 민족의 원흉이자, 주적국으로 남북간 관계유지는 국가와 국가간으로 분리되는 것이다, 그런데 與, 野의 몰상식한 의원님들께서는 어떤가? 자신들이 마치 새로운 이슈를 생산이라도 한 것처럼 예민한 남북한 문제를 자신들의 전유물처럼 쥐락펴락한다는 것이다.


신세대나 학생들도 학생들이지만 솔직히 대한민국 민중의 대표이신 국회의원님들께서는 6.25사변이란 무엇인가, 남침인가, 북침인가? 어떻게들 알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6.25사변이 북침이라 주장하는 골수들에게 묻는다, "선 타격에 의한 어쩔 수 없이 방어했다"는 북한괴뢰들이 주장하는 북침인가? 국민들이 잠에서 깨어 정신들면 어려울 것 같으니, 새볔 동트기전 인민군을 끌고 내려와 만 3일 만에 서울을 접수한 북한괴뢰집단의 남침인가?

 

역사에 대한 상식도 없이 국가나 사회혼선을 야기하려는 무리들에 허구적인 논리를 적당히 인용하여 역사를 왜곡해선 안된다. 진실 된 역사를 후대에 물려줄 의무는 우리 몫이기 때문이다.

 

Source: independent.co.kr

 

oldma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