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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촛불 강박증이 피로한 이유

언론의 촛불 강박증이 피로한 이유

 

피곤한 국민은 촛불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박한명 기자 (hanmyoung@empas.com)

2013.08.12 11:56:37

 

 

 

 

 

 

 

 

이것은 소위 촛불 시민의 정신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을 것이다. 촛불은 보여주지 않고 류현진과 손연재만 보여준다며 분개하고 날씨 뉴스가 촛불보다 중요하냐며 핏대를 세우는 소위 민주 시민들의 불만과 분노를 그대로 전달하고 있을 것이다. 매일 같이 촛불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매체들의 보도 얘기다.

 

국기문란의 몹쓸 짓을 한 국정원을 개혁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당장에라도 숨통이 끊어질 지경인데 도대체 공영방송사들은 뭘 하고 있는지 하루라도 때리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 기껏 보도한답시고 봤더니 달랑 뉴스 한 줄에, 그것도 정쟁으로 보도하니 열이 올라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매일 같이 분노의 촛불로 지면을 구석구석을 달구는 것일 게다. 그래서 촛불 숫자에 그리 신경을 쓰는 것일 게다. 자신들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숫자로 증명하고 싶은 거다. 회를 거듭할수록 경찰의 추산인원과 차이가 커지는 이유가 다 여기에 있다.

그러나 미안한 말이지만 이들 언론의 국정원 촛불 보도는 그저 악다구니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공영방송사들의 뉴스를 모니터링해서 촛불 집회 보도를 했는지 안 했는지, 했다면 몇 번째 꼭지로 넣었는지, 시간은 몇 분 몇 초인지, 정부여당이 얼마나 나쁜 놈들인가를 지적했는지 아닌지, 촛불을 축소·왜곡해 보도했는지 안 했는지를 따지는 식의 기사들이 거의 강박증처럼 보인다. 알다시피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은 검찰이 수사 중이고, 야당이 원하던 국정조사도 진행 중이다.

 

그런데 야당은 뜻대로 잘 안된다고 느닷없이 거리로 뛰쳐나가 대통령의 사과부터 요구하고 있고, 본래부터 박근혜 대통령을 인정할 수 없었던 사람들도 다시 뭉쳐 거리에서 대통령 하야, 대선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입만 열면 민주주의 수호자인 양 행세하는 이들이, 자신들만이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이들이 이년 저년 하면서 당장 직에서 내려오지 않으면 목덜미를 잡혀 끌려 내려오게 될 터이니 각오하라고 협박을 한다. 이게 지금 SNS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들이다.

정의를 독점한 촛불세력의 강박증과 퇴행을 방송에서 보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런 민주시민들이 방송사에 요구하는 촛불보도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하라는 것이다.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 등이 공영방송을 때리는 요지도 미디어오늘이나 오마이뉴스와 같은 매체들의 요구와 다르지 않다. 촛불을 든 민주시민들이 대통령과 국정원에 대해 얼마나 화가 났는지 리얼하게 국민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주장이고 그것이 정의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만의 강박에 불과하다.

 

촛불이 정의라는 틀에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그들의 모습은 날씨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평범한 국민 눈에는 진부할 뿐 아니라 불편하며 짜증이 날 뿐이다. 최악의 폭염 기록을 갱신하는 날씨 정보가 촛불을 들고 늘 똑같은 모습으로 그들만의 분노를 쏟아내는 뉴스보다 더 중요하고,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야구 중계가 더 값지다. 촛불 수가 얼마나 늘었느냐보다 채소와 과일값이 얼마나 더 올랐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방송을 통해 촛불을 보여주고 국민의 분노와 죄의식을 자극해보려는 짓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적지 않은 의석수를 만들어줘도 만사 촛불에 기대는 무능의 극치를 달리는 야당과 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외치는 꾼들의 반정치, 반민주 귀태 짓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만큼은 우리의 민주주의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금의 촛불은 성숙한 시민의식이 아니라 자칭 진보라는 이들의 무능과 게으름, 회의만 각인시켜 줄 뿐이다.

 

한여름의 태양이 달군 광장에서 매주 촛불 시민이 쏟아내는 욕설과 비난과 저주와 증오는 생산적이지도 발전적이지도 그렇다고 파괴적이지도 못하다. 그저 진화하는 민주주의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일시적 퇴행이자 미미한 반동 현상에 불과하다. 촛불의 이런 퇴행과 배설을 여과 없이 방송에 그대로 내보내 전 국민이 보고 들어야 한다는 주장이야말로 지독한 악취미고 변태적 가학일 뿐이다.

방송이 특히 공영방송이 촛불세력의 강박증과 독선을 위해 뉴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촛불을 보도하지 않는다고 매일 같이 방송을 때리는 언론매체들의 독선이 일상에 녹아든 민주주의로 숨 쉬며 사는 평범한 우리네에게 얼마나 병적으로 다가오는지 알았으면 좋겠다.

 

민주주의는 촛불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적 강박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완벽하지도, 알고 보면 그다지 정의롭지도 못하다. 때로는 지독하게도 이기적이다. 그러나 역사 발전과정에서 그 불완전한 민주주의가 정의를 독점하려 했던 모든 가치와의 대결에서 살아남았다. 민주주의가 사회발전의 원리가 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사회발전과 역사의 진보는 정의를 독점하고 강요하는 촛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촛불의 정의로움을 강조하는 언론의 강박증은 그래서 피곤하다. 피곤한 국민에게는 방송을 통해 촛불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hanmyoung@empas.com
 

 

[젊고 강한 신문-독립신문/independent.co.kr]

 

Source: independen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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