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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해병대 최초의 미 해병학교 유학장교들.

해병대 최초의 미 해병학교 유학장교들.


앞줄 좌측부터: 이건우 소위(해사 7기 고인) 양석호 중위(해간 7기) 김종대 대위(해간 3기)김갑준 대위(해간 3기) 안명남 대위(특과 2기 사령관 부관) 중앙 김석범 사령관, 오른쪽 김성은 소장 오윤진 중위(해간 7기)얼굴 왼쪽 뒤 황보철 소위(해간 9기) 얼굴 오른쪽 뒤 김원균 중위(해간 6기), 앞줄 오른쪽 첫째 본인, 이근식 대위(해간 3기) 뒤에 유시종 소위(해사 7기)
앞줄(앉은 자세). 왼쪽 첫째 이효갑 소위(해사 7기) 성태석 중위(해사 4기) 최기던 중위(해사 6기) 이병화 중위(해사 5기) 김관진 소위 (해사 7기 머리에 손을 얹음)

위의 사진은 1954년 여름 미 해병학교(Basic School Marine Corps Schools Quantico, Va.)에 유학 중에 있던 해병대 장교들과 해병학교를 방문하신 김석범 사령관님이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이때 최초로 해군에서 해병대로 전과한 해사 출신 장교들(성태석 중위 해사 4기, 이병하 중위 해사 5기, 최기덕 중위 해사 6기 및 7기생 소위)이 처음으로 해간 7기생(중위)들과 함께 미 해병학교에 입교하였습니다.

이때 해간 3기인 본인은 대위였으며 이들보다 5개월 먼저 입교하였으나 "도솔산 전투" 때의 부상이 학교 수료일 3주 전에 갑자기 재발하여 해군병원에 1개월 간 입원, 무릅관절수술(파편제거) 후, 그때까지 관절 속게 박혀있던 파편을 제거 후 이들과 함께 교육을 다시 받았습니다. 결국 똑같은 교육을 두번 받은 셈이지요.

                                미 해병학교 유학 장교들
좌로부터: 김동진 대위, 박은회 대위, 남상휘 중령(Senior School) 안성균 대위, 및 이근식 대위 (대위들은 Basic School) - 1954년 4월 -

그 당시(1951년 6월) 진해 해군병원에서는 "도솔산 공격" 시의 상처(무릅관절)를 당시의 의술로는 수술할 수 없다하여 파편 제거수술을 못하고 무릅관절 속에 파편을 그대로 둔채 중동부전선과 서부전선(사천강 전투)에서 제2대대 제5중대장 및 제1대대 중화기중대장 근무(17개 월)를 했는데 그때는 전혀 이상이 없었던 부상당한 무릎이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3년이 지나서 다시 재발하여 졸업일 3주일 앞두고 갑자기 밤 중에 재발하여 미 해군병원에 입원하여 무릎관절 수술(파편 제거) 후 1개월만에 퇴원하였습니다.

이때 해간 3기는 본인(이근식 대위)과 김종대 대위, 김갑준 대위 3명이었는데 두 김 대위는 이미 고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도솔산 전투" 때의 제2중대장, 소대장 4명과 후임중대장(박희태 중위 해간 3기) 및 후임소대장 2명 등 8명은 전부 지금은 유명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도솔산 전투" 당시 목표 #4의 중간목표인 "무명고지'를 내가 단독으로 수류탄 공격할 때 "야! 너 올라가면 죽는 거야!"하며 나를 극구 말리던 제2소대장(김용겸 소위)은 30대 초에 세상을 먼저 떠났답니다.

나는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을 현실로 보며 또 그것을 실감하며 지금 살고 있습니다. 때문에 본인은 항상 그 하나님께 감사하며 지금 살고 있는데 그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 즉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에 대하여 "하나님의 시간대"에서 언급되어 있습니다


                                                김두찬 해병대 사령관 미 해병교육단 방문.
좌측부터: 김해근 소령(해간 8기 Jr. School), 장대길 대령(Sr. School), 건너서 김두찬 사령관, 미 해병교육단 사령관 Lt. Gen. Cate, 이영우 준장. 김성대 대령, 본인 이근식 중령(해간 3기 Jr. School 옆을 보고 있음), Lt.Col. Heart(전 사령부 G-3 고문관), 김평곤 중령(주미 해군무관 보좌관), 김기화 중령, 김관진 소령(해사 7기 Jr. School)은 사진에서 빠져있음.

위의 사진은 1964년 5월 14일 김두찬 사령관께서 미 해병대의 각부대를 방문, 시찰하시던 중 미 해병교육단(U.S.Marine Corps Schools Quantico. Va.)을 방문하시여 피교육 중에 있는 한국 해병대 학생장교(3명)들과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도솔산 전투"에서 그리고 "장단, 사천강 전투"에서 살아남아 이렇게 4회에 걸친 해외유학을 통하여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을 현실로 보았고 또 그것을 실감하며 나는 지금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인은 항상 그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고 있으며 그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 즉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에 대하여 "하나님의 시간대"라는 제목으로 서술하였습니다. 
                               미 해병학교(Basic School)

좌측 김종대 대위(해간 3기) 우측 이근식 대위(해간 3기) - Basic School U.S. Marine Corps Schools Quantico Va. - 1954년1월~12월 -
 미 육군 특수전학교

좌측 이근식 중령, 육군 공수단 대대장 이원호 소령, 이광로 소령 U.S. Army Special Warfare School Fort Bragg N. Carolina -1962년 5월17일~7월28일 -

                                                      미 해병학교(Junior School)
 

이근식 중령

w/Trophy Pistol Club Junior School U.S.Marine Corps Schools Quantico, Va. -1963년 8월~1964년 6월 - 


                                                           미 육군 지휘, 참모대학
U.S. Army Command & Gen. Staff College 육군장교들과 함께 이근식 대령(중앙). 육군 장교 중 2명(좌측)은 소장으로 전역하였음. - 1968년 8월~1969년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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